[서평] 결코 사라지지 않는 로마, 신성로마제국

<결코 사라지지 않는 로마, 신성 로마 제국> 기쿠치 요시오 지음·이경덕 옮김 다른세상· 1만4000원

“스스로 신성 로마 제국이라 칭하였고 아직도 칭하고 있는 이 나라는 딱히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며 제국도 아니다”

18세기의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가 당시 신성로마제국을 평한 말이다. 그 당시의 신성로마제국은 그야말로 이름만 거창한 제국이었고 제국에 속한 영방국가는 일개 독립국이나 다름없었다. 볼테르가 남긴 말은 이렇게 껍데기밖에 남지 않은 신성로마제국을 비꼰 말이다. 말년에는 볼테르에게 조롱당하긴 했지만 사실 신성로마제국을 빼놓고 중세 유럽사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신성로마제국이 중세 유럽에 끼친 영향은 상당했다.

일본 작가 기쿠치 요시오는 이 책을 통해 신성로마제국의 역사를 황제의 연대기 형태를 차용하여 기술하였다. 프랑크 왕국의 카톨링거 왕가의 시초인 피핀 1세, 유럽을 통합한 카를 대제, 파란만장한 일생의 하인리히 4세, 붉은 수염 바르바로사 1세, 합스부르크 왕가를 세운 루돌프 1세, 황제에서 퇴위와 동시에 제국의 해체를 선언한 프린츠 1세당 수 많은 개성 넘치는 황제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황제의 역사를 단순하게 기술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중세 유럽사의 중요한 사건일 경우 그 의미를 추가적으로 설명했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과 카를 대제의 대관식을 시작으로 교황권과 황제권이 충돌한 “카노사의 굴욕”, 합스부르크 집안의 대두와 금인칙서, “30년 전쟁”의 끝인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인한 국민국가의 탄생, 1806년 신성로마제국의 해체까지 중세 유럽을 관통하는 굵직한 사건에 의미를 설명함으로서 독자가 역사를 넓은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이 책은 일반 독자들은 가볍게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1000년의 세월 동안 등장하는 수 많은 인물 그리고 독일, 오스트리아, 폴란드, 이탈리아 심지어는 스페인 지역까지 드넓은 지역을 넘나들며 풀어나가는 이야기를 250페이지 남짓한 분량으로 설명하려다보니 더더욱 그러하다.